전시공간
기획전시실 & 국악기박물관
빛고을국악전수관의 지상 2층으로 올라가면 편경, 편종, 장구, 징 등을 직접 연주할 수 있는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각종 국악기 모형 공예품, 국악 서적, 음반 등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지상 3층엔 상설전시장인 국악기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이곳엔 가야금을 비롯해 국악기 45종 62점이 진열돼 있고 신라금 등 11점의 유물복제품이 배치돼 있다. 또한 전시장 곳곳에 영상물을 통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이처럼 전시장은 우리 고유의 전통의 멋과 아름다움을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전시중인 악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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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경 국악기 중 석부에 속하는 유율타악기
본래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악기로 우리나라에는 1116년(예종 11)송나라의 대성아악과 함꼐 들어왔다. 수원 부근에는 질이 좋은 경석이 발견되어 이를 박연, 맹사성등이 갈고 닦아 중국의 석경보다 좋은 편경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두 개의 방대위에 흰 오리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나무틀을 세워 양편에 봉황을 조각하였으며 틀 위에는 다섯 마리의 공작을 세워 장식하였다. 이 틀에 16개의 ㄱ자 모양의 석경을 8개씩 두 줄로 나누어 걸고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반드시 긴 쪽인 고의 끝을 쳐야 한다. 음역은 12율 4청성 즉 황종에서 청협종에 이르며 음색은 매우 청아하며 습기와 온도에도 음색과 음정이 변하지 않아 모든 국악기 조율의 표준이 되고 있다. 대전통편에 편경을 다룰 때 잘못하여 이를 파손한 자에게는 태장일백, 도형, 3년의 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악기가 소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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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종국악기 중 금부에 속하는 유율타악기
본래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악기로 한국에는 1116년(고려 예종 11)송나라에서 들어왔으며 그 후 계속 수입해오다 조선 세종때부터 주종소를 두고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두 개의 방대 위에 사자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종을 이 틀에 16개의 종을 상하 2단으로 8개씩 나누어 매달고 각퇴로 종 아래 정면에 있는 수를 쳐서 소리를 내는데 그 때리는 강도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음역은 12율 4청성에 이르며 음색은 웅장하고 날카로운 금속성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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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국악기 중 금부에 속하는 유율타악기
고대 중국의 악기로 한국에서는 조선 세종 때 박연이 아악을 정비할 때 새로 만들어 궁중 아악에 사용해왔다. 길이 50cm 정도의 종 하나를 종틀에 걸어놓고 치는데 본래는 달에 따라 십이율에 맞는 12개의 특종을 골고루 썻다. 그러나 성종 이후로는 황종의 특종 하나만이 제례악 등가에서 음악이 시작될 때 사용되었다. 현재도 문묘제례악, 석전제례악에 등가에서만 쓰이며, 악작할 때 박 다음과 고축삼성 다음에 한 번씩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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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경국악기 중 석부에 속하는 타악기
가경이라고도 한다. 1개의 경을 나무틀에 달아 각퇴로 쳐서 소리내는데 음색이 맑고 청아하다. 본래 중국 고대의 아악기였으며 한국에는 고려 때 들여왔을 것으로만 추정될 뿐 정확한 시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의 크기만이 조금 클 뿐 모양, 연주법 등은 편경과 거의 같으며 또 특종은 음악을 시작할 때, 특경은 끝날 때 치는 점이 다르다. 옛날에는 특종과 같이 12개가 있어 12달에 따라 쓰였으나 지금은 황종의 특경만이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에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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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국악기 중 금부에 속하는 타악기
철향이라고도 하며, 16개의 철편을 틀의 상단과 하단에 각각 8개씩 매어놓고 망치 모양의 각퇴로 쳐서 소리낸다. 중국 양나라 때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당송원에서는 주로 연악에 쓰였고, 명청시대에는 아악에 쓰였다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한국에서는 고려 문종 때(11세기) 이 악기로 당악을 연주한 이래 줄곧 당악과 고취에 편성되어 쓰였다. 철편은 강한 쇠붙이로 만들며 크기는 16개 모두가 같은데, 두텁고 얇음에 따라 음정이 다르다. 철편의 위쪽에 구멍을 뚫어 삼갑진사로 꿰어 고정시켰으며, 가자를 나무로 조각한 새끼호랑이 2마리에 올려놓고 있다. 철편의 모양이 임진왜란 전에는 위쪽이 둥근 직사각형이었으나 임진왜란 후 각이진 직사각형으로 변하였다. 현재 음역이 너무 높고, 음색이 고르지 못하며, 탁하여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나, 종묘제례 때 편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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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국악기 중 혁부에 속하는 피명악기
크기가 작은 사면고로 북통의 길이 33.6cm, 지름 15.47cm이며, 몸통이 긴 북 2개를 십자형으로 포개어 긴 나무 장대로 북통을 관통하게 한 모양이다. 장대의 꼭대기에는 활짝 핀 연꽃을 올려 놓았고 연꽃 위는 날아갈 듯한 새 한 마리를 얹어 장식하고 있다. 또 북마다 양쪽 허리에 가죽끈을 길게 매달아 연주할 때는 나무대를 흔들어 가죽끈이 북면을 두들겨 소리나게 한다. 예전에는 노고와 함께 인신의 제사인 선농선잠우사문묘 등에 쓰였으나, 지금은 공자의 신위를 모신 문묘제례때만 헌가에 편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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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고국악기 중 혁부에 속하는 타악기
북의 일종으로 나무로 된 틀에 매달고 채로 쳐서 소리낸다 [고려사]나 ⟪악학궤범⟫에는 전혀 언급이 없고 조선시대 김호동의 무악도에 처음 나타난다. 지금도 삼현육각합주 등에 쓰이고 있다. 치는 방법은 장구가 합장단과 북편을 칠 때 한번씩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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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국악기 중 혁부에 속하는 타악기
북의 일종으로 음악의 계통으로는 아악기에 속한다. 지름이 3자 5치 2푼, 길이 5자로 한국 북 중에서는 가장 크며 북통이 붉은색이다. 4개의 기둥에 가름대를 설치한 나무틀에 올려져 있으며, 끝을 헝겊으로 감은 나무 방망이로 쳐서 소리를 낸다. 고려 때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와 문묘제례악에 사용하였으며,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1번 음악이 끝날 때 3번 친다. 또한 음악의 중간에서도 절고와 함께 매 구절 끝마다 2번씩 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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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라국악기 중 금부에 속하는 악기
본래는 중국의 악기이며 구운라 운오라고도 한다. 한국에는 조선 후기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놋쇠로 조율해서 각기 다른 높이의 소리를 내는 작은 정 10개를 나무틀에 매달고 나무망치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매우 맑고 영롱한 음색을 지녀 경쾌한 음곡에 알맞다.
징을 배열하는 방법은 맨 아래의 왼쪽이 가장 낮은 음의 징이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높아가며, 둘째 간은 오른쪽이 낮은 음이고 왼쪽으로 가면서 높아진다. 셋째 간은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높아지는 순서이며 맨 위의 중앙에는 가장 높은 음의 징 하나를 걸어 놓았다. 이 악기는 다섯 정성과 다섯 청성으로 나뉘어 청탁의 구분이 있고, 행진용의 손잡이가 있는 것도 있다. -
거문고국악기 중 사부에 속하는 현악기
현금이라고도 한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서 만든 6줄을 메고 술대로 쳐서 소리낸다. 소리가 깊고 장중하여 예로부터 ‘백악지장’이라 일컬어 졌으며, 학문과 덕을 쌓은 서비들 사이에서 숭상되었다. 지금도 줄풍류를 비롯하여 가곡 반주거문고산조 등에서 출중한 멋을 나타내고 있다. 기원은(삼국사기)에, 중국 진나라에서 보내온 칠현금을 제이상 왕산악이 본디 모양을 그대로 두고 그 제도를 많이 고쳐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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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악기 중 목부에 속하는 채명악기
음악의 계통으로는 당악기에 든다. 6조각의 얇고 긴 판목을 모아 한쪽 끝을 끈으로 꿰어 폈다 접었다 하며 소리낸다. 음악의 시종과 음절완급을 지시하며 춤의 변속도도 조절한다. 신라 말부터 박판이라는 이름으로 춤과 노래의 반주에 쓰였으며,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당악향악에 두루 쓰였다. 치는 법은 두 손으로 모아잡고 아래쪽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벌렸다가 왼손은 움직이지 않고 오른손으로 벌려 급히 접으며 소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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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국악기 중 토부에 속하는 공명악기
훈이라고도 쓰며 점토를 구워서 만든다. 중국 고대 토기시대의 유물이며 한국에는 1116년(고려 예종 11)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다. 지공은 앞에 3개, 뒤에 2개가 있으며 취구는 상단에 있다. 음넓이는 황종에서 응종까지인 12음을 내며, 음색은 어두운 편이며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지녔다. 문묘 제례악에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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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비파국악기 중 사부에 속하는 발현악기
둥그스름한 공명통에 머리부분이 곧은 경, 즉 직격은 지닌 5현의 악기이다. 이 ‘5현’은 향비파와 이명동물인 악기로 고구려 EO 서역, 즉 구자로부터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신라에 전해져 신라 삼현삼중에 편성되어 사용되다가 당시 전해진 당비파와 구분하기 위하여 향비파라고 따로 이름한 것이다. 악기의 제도는 거문고와 같이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밤나무를 사용하고 있으며, 대모를 붙여 술대로 연주한다. 술대를 쥐는 법에 관하여는 ⟪악학궤범⟫에 거문고와 같이 자(自)자 모양으로 쥔다고 하였으나, 손 모양은 옆으로 긁어서 소리내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 때 술대를 쓰지 않기도 하였다. 이 악기는 1930년대까지만 하여도 거문고를 전공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겸공으로 연주하였으나 언제부터인지 연주되지 않아 현재는 악기만이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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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국악기 중 사부에 속하는 현악기
4각의 나무판에 철로 된 현을 얹은 악기로, 이 철현을 대나무 껍질로 만든 작은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문현에는 구라철사금으로 기록되었으나 서양에서 들어온 금이라 해서 양금이란 이름이 일반화 되었다. 지금은 (영산회상)등 관현합주, 또는 단소와의 병주 등에 쓰인다. 악기의 제도는 사각형 상자 모양의 판면 위에 줄을 받치는 긴 괘(법)를 두 개 세우고 그 위에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된 철현 네 줄을 한 벌로 하여 열네 벌을 얹는다. 채는 대나무의 껍질을 벗겨 끝을 약간 두껍게 깎아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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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국악기 중 중부에 속하는 공명악기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한다. 원말은 대함이다. 가로로 부는 피리류의 악기로 신라 때는 중금소금과 더불어 삼죽이라 하여 신라악에 편성되었고, 또 ⟪삼국사기⟫에는 신라에는 대금곡이 324곡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피리는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의 두 종류가 있으며, 조선 성종 때의 ⟪악학궤범⟫에는 해묵은 황죽으로 만든다 하였으나 지금은 살이 뚜껍고 단단한 쌍골죽을 제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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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국악기 중 사부에 속하는 현악기
가얏고라고도 한다. 오동나무 공명반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12줄을 세로로 매어 각 줄 마다 안족(雁足:기러기발)을 받쳐놓고 손가락으로 뜯어서 소리를 낸다. 줄풍류를 비롯하여 가곡반주 가야금산조가야금병창 등 한국음악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청아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국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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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국악기 중 혁부에 속하는 타악기
일종의 양면고(兩面鼓)로 허리가 가늘어 세요고(細腰鼓) 또는 장고(杖鼓)라고도 한다. 두 개의 오동나무통을 가는 조롱목으로 연결시키고 통의 양편은 가죽으로 메웠다. 그리고 왼편 가죽, 즉 북편은 흰 말가죽을 쓰고 오른편 가죽, 즉 채편은 보통 말가죽을 쓰는데, 북편은 두꺼워서 낮은 소리가 나고 채편은 얇아서 높은 소리가 난다.
이 양편이 지름 약 45cm 되는 쇠로 된 테[圓鐵]에 매어 고정되어 있고, 테의 군데군데에는 걸겅쇠[釣鐵]를 걸어 숫바[縮繩]로 얽어매고 있으며 얽은 줄마디에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음정을 조절할 수 있는 부전[縮綬]을 끼웠다. 장구에 관한 가장 오래 된 문헌은 1076년(고려 문종 30) '장구업사(業師)'가 있었다는 기록이며, 이보다 앞선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신라의 범종(梵鐘)에 새겨진 그림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장구는 당악향악 등에 두루 쓰였으며 지금은 정악을 비롯하여 산조잡가민요농악무악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