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명의 유래 및 생성과 변천 |
- 조선조 초기에 청주한씨가 입촌하여 생성된 마을로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 형국이 연하꽃과 같고 마을앞에 연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 위치 및 자연환경 |
- 서창관내 서부 중앙부에 위치하여 마을뒤에 백마산과 옥녀봉이 솟아있고 마을앞에는 송정평야의 넓은 들이 펼쳐져 그들가운데 극락강이 흐르고 있어 수리가 과히 양자하여 전형적인 농천형국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마을 앞에 1,400평 남짓한 연못안에 만귀정, 습향각, 묵암정사 등 세체의 수중정자가 있어 경광이 빼어나고 왜정때에는 "만귀정 시회" 라는 선비들의 모임이 있어 풍유와 오락을 즐기는 원근시인 묵객들이 한때의 청유를 즐겼다.
|
| 성씨 분포 |
- 총 86호중 흥성 장씨 20호, 전주 이씨 7호, 김해 김씨, 함양 박씨 각 6호, 낙안 오씨 3호
|
| 산업 및 경제 |
- 주종수도작이 주종을 이루며 특산물로 미나리가 다량생산되고 시설원예를 하는 외래농가가 많으며 전업 축산 농가가 3호 있다.
|
| 자생조직 |
|
| 문화재원 |
- 마을 앞에 연못안에 만귀정, 습향각, 묵암정사 등의 문화재가 있는데 그중 만귀정과 습향각은 이곳에 세건하는 흥성 장씨가 그 조상의 유덕을 기려 지은것이며 묵암정사는 이 마을 출생 장안섭공(호 묵암)의 송정읍장 재직시의 공덕을 기려 광산군민의 성금을 모아 지었다.
그리고 이 마을앞에 3기의 공덕비가 있는데 그 하나는 전 송정읍장 장안섭공의 뛰어난 공적을 기려 송정읍장이 세웠으며 이밖에 수리 시설(백마양수장)건설에 축한 공덕비 2기가 있는데 하나는 이마을 출신 장창섭공의 양수장시설의 공로를 새긴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양수장을 개인경영으로부터 몽리인자영으로 만든 장재철씨의 공로를 기려 세웠다.
|
| 민속자료 |
- 마을어귀에 개 모양의 입석이 있었으나 6.25동란 수복즉후 만귀정관내에 옮겨졌고 왜정때와 광복초기에 걸쳐 동제와 당산제가 성행되었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
| 전설 |
- 이웃마을 매월동 개금산에 있는 흥성장씨 선산에 라모양반이 권세를 믿고 늑장을 하려고 상여를 갖고 들이 닥쳤다. 이에 분격한 흥성 장씨 장봉익공(호 민제)이 자기 허벅지를 칼로 째고 그속에 칡넝쿨을 꿰어넣고 "너죽고 나죽자"고 장칼을 들고 상주에게 달려들자 상주와 상여군들이 혼비백산 넋을 잃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상대방 라모씨의 고발로 관가에까지 알려져 장봉익공이 송정에 서게 되었는데 죄명은 엉뚱하게도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함부로 손상했으니 불효를 저질렀다는것 반면 그때 관아에도 사리에 밝은 명관이 있어 선영을 지킨 효성이 기특하다해서 방면이 되고 그 훈적을 기리는 후손들이 세운 비가 그곳 흥성장씨 선산하에 서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