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볼거리

볼거리

봉산사
‘엄이재(掩耳齋)’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에 그만 ‘귀를 닫아버리고(掩耳)’ 싶었다고 한다.
귀앞에 커다란 벽을 두고 스스로를 침묵의 세상에 가둔 사람.사노라면 그렇듯 유배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 엄이재에 살던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러 간다. 가을길은 어디라도 아름답다.
오래된 꿈을 꾸는 나무
오래된 꿈을 꾸는 나무 ‘엄이재(掩耳齋)’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에 그만 ‘귀를 닫아버리고(掩耳)’ 싶었다고 한다. 귀앞에 커다란 벽을 두고 스스로를 침묵의 세상에 가둔 사람. 사노라면 그렇듯 유배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 엄이재에 살던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러 간다. 가을길은 어디라도 아름답다. 이제 할 일을 다 마친 들판 위로 하릴없이 바람이 지나간다. 억새와, 꽃처럼 푸른 하늘에 뿌려진 감나무 그런 것들을 지나는 사이 쓸쓸했던 마음에 흰 햇살 스며온다. ‘봉학(鳳鶴)’이라는 마을이름이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한다. 저기 저 은행나무! 저자거리의 그 은행나무가 아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오래된 꿈을 꾸는 듯. 바람과 햇살과 나뭇잎들이 그 커다란 가지에 앉아 웃고 소근대다 그만 내려앉은 마당이 노오랗다. 뜰앞의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로 가을을 안다던가. 커다란 오동잎 여기저기 구르고 잡풀 우거진 봉산사 뜨락엔 휘르르- 새의 울음소리만 청명하다. 한말의 선비 고광선을 제향한다는 사당은 그저 비어 있다. 그 지붕 너머 솔숲과 그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이 사당을 폐허처럼 버려두고 잊어버린 사람들을 대신하여 여기 깃들었던 한 사람의 높은 뜻을 지키고 있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비운을 강개하여 귀를 막고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엄이재를 짓고 봉황산 기슭에 들어앉았다. 세상을 절연하고 어쩌면 한 마리 봉황을 기다렸을 그 자신이야말로 그 견결하고 매운 의지가 봉황의 높은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봉황산에 오른다. 먼옛날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상수리나무 마른잎 밟는 소리를 듣는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귀귀울여 들어볼 소리가 무엇이던가. 뜰앞에 오동잎 지는 소리. 익을 대로 익은 감이 제풀에 털썩 풀섶에 떨어지는 소리, 다람쥐나 노루가 가만가만 내려와서 그 감 한 잎 베어먹다 에퉤- 하고 내뱉는 소리, 잡목 사이로 푸드드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의 날갯짓 소리. 구절초 보라색꽃 여기저기 흩어진 가을동산이 어여쁘다. 밤송이 솔방울 청미래덩굴 또 콩깍지 같은 저 열매들 마른 나무등걸 그런 것들이 정답다. 사는 게 그러한 일인지 모르겠다 . 구부러진 길을 돌아 애써 찾아간 곳은 남루하고 초라하였으나 그 언저리엔 이렇듯 고운 꽃잎 숨은 듯 피어나 있는 것, 비탈길 조금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 사는 일이 도무지 어둡기만 한 날 엄이재에 간다. 거기 이끼 낀 댓돌 위에 앉아 누구라도 그렇게 고단하게 살다 가는 것이라고... 먼 옛날 귀 어두운 한 사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 홀로 가을빛 밝히고 선 은행나무 아래 외로운 꿈 꾸어 본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평균 0.00 1명 참여

만족도 선택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