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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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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사
  • 위치

    주소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운천길 31 (금호동)
    명소 주변의 주요시설이나 건물 : 상무초등학교, 금호호반 아파트

  • 규모 및 시설물

    유형문화재 제11호, 정면 5칸, 측면 2칸, 8작 지붕

특징
  • 고려초 충신 지용기와 공신 정금남 지계유 지녀혜등을 배향 현충의 정신을 세인과 후세에 심어주기 위하여 붕난 지웅현 선생이 1942년 건립한 것으로써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강당인 존심당으로 고려시대의 것을 추정됨
이용안내
  • 이용시간 및 제약사항 없음
대중 교통
  • 경유버스 : 순환01, 지원45, 풍암61, 송암72, 송암73, 진월77, 대촌270
봄날 병천사 뜨락을 거닐다
봄날 병천사 뜨락을 거닐다. 대지에 푸른 물이 들기 시작하는 봄날, 나도 푸른 물이 들어볼 양으로 문밖에 나선다. 병천사(秉天祠)라는 사당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파트 빌딩들 아래 그렇게 단정하게 고즈넉한 자태로 자리하고 있는 한옥의 지붕들이며 돌담과 마주했을 때 멈칫, 여염집 아녀자처럼 몸가짐이 절로 조붓해진다. 저 나무대문 좀 보아. 작은 국화문 장석이 정겹고 예쁘다. 백동이니 구리처럼 윤이 나는 재료로 호사를 택하지 않고 연철을 쓴 것은 세월 속에서 녹슨 쇠야말로 나무와 가장 잘 어우러진다는 미감에서 나온 거라고 한다. 그렇듯 도드라지게 드러내지 않는 게 우리 전통 가옥의 은은한 멋이려니. 대문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본다 이 문틈에 달빛이 비쳐들어오는 걸 형상화한 글자가 사이 간(間)자의 어원이라 했다. 모름지기 사람 사이에도 이 만큼의 틈이 있어 내비침을 당할 때 늘 부끄럼 없는 언행을 할 수 있으렷다. 삐그덕 대문여는 소리는 엘리제를 위하여 등속의 인터폰소리에 비길 바 없이 운치 있다. 문지방을 넘는 한 발자욱에 옛 뜨락 속으로 시간을 넘어서는 듯하다. 두어 걸음 돌계단을 오르면 반듯하고 자그마한 풀밭이 있고, 옛날얘기에 나오는 장사가 놀다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공깃돌처럼 사람 하나 앉을 만한 바위들이 예닐곱 개 흩어져 있다. 사뭇 가까이 두지 못해 애닯은 그가 있다 해도 저만큼 먼 자리에 앉혀 두고 바라볼 일이다. 쑥이며 냉이가 여기저기 파릇하지만 된장국 한 그릇 끓일 요량보다는 찾아오는 다른 사람의 눈에도 향긋한 봄내음으로 안기려무나 당부하고 싶은 맘이 앞선다. 담장은 애걔걔- 어깨 높이다. 그렇게 담장이 낮으니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흠잡힐 일이 없으려면 옛날 여인들이 마루 닦아 윤내듯 마음자리 갈고 닦고 사는 게 버릇이 되어야할 터이다. 기와지붕 위로 강아지풀이 한가롭게 흔들리는 존심당(存心堂)의 정갈한 앞마당에서 꼭 어울리는 배경음악처럼 북장단 소리를 듣는다. 한송죽(寒松竹)이라 이름붙인 건물에 운백(雲白) 배영배 고법사랑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댓돌에 신발 몇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기척을 하면 방해가 될까 저어되어 가만가만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문고리를 지른 건 수저다. 옛날에는 그랬다. 숟가락 하나만 꽂아두고 깊은잠을 잤다. 이제 사람들은 숟가락으로는 지킬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갖고 산다. 믿음과 단꿈을 잃었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사당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닫힌 문 사이로 고개 숙인다. 고려말 충신 정몽주와 무장 지용기, 조선조 임진왜란 때의 공신 금남 정충신과 지계최, 광해조 때 금산부사를 지낸 지여해, 이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안은 어둡다. 그러나 시대를 고민하고 자신을 성찰 했던 그들의 가르침은 등불처럼 밝다. 일제 치하(1924년)에서 이 사당을 지어 나라를 잃은 울분을 달래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하고자 했던 붕남 지응현선생의 올곧은 뜻 또한 해마다 돋는 저 풀보다 더 푸르게 되살아날 것이니. 새 한 마리 용마루에 앉아 무어라고 우짖는 봄날 오후, 병천사 뜨락을 거니는 마음에 어느새 연초록 봄물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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