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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촌명의 유래및 생성과 변천
  • 동명의 유래 : 100여년전까지도 갈대밭이었으나 일제때 큰장이 서기 시작했고 축구장 씨름판도 있었음. 큰샘이 있어 "샘몰"이라 불렀으며 일제때는 천정이라 불렀음.
  • 양동이라 부른것은 1946년 일제의 잔영을 없애기 위한 동명을 바꿀때 부터이다. 여러 직종의 드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터라는 지역적 특성에 착안하여 어질게 살라는 뜻으로 양동이라 했다.
위치 및 자연환경
  • 불로동 하천면에 광주장이 섰으나 1910년대 광주교 아래 백사장에 2, 7 일장이 개장하면서 광주큰장이라 불렀다. 오일장으로 거래액이 연 7천만원이나 되어 전남제일의 시장이 되었다.
  • 1940년 4울 10일 양동 5번지에 새터를 잡아 1800여평 634개 점포를 갖춰 설립인가를 받았다. 1971년 복개상가까지 마련되어 더욱 장세가 커져 현 광주, 전남 최대의 상설시장이 되었음.
성씨 분포
  • 다수의 성씨가 분포되어 살고 있음.
산업및 경제
  • 1940년 부터 양동시장이 개설되어 공산품가게 11개, 농산물가게 97개, 수산물 94개, 기타 50개 점포로 서구지역 경제의 중추적 역활을 담당하고 있으며,복개상가는 1969년 광주시로부터 하천부지 8,000평을 구입 의류점포 164개, 가구 67개, 침구수예 53개, 가방신발 10개, 기타(수선, 식당, 철물) 37개로 형성하고 있으며 이중 가구시장은 중부 이남에서는 최대 규모로 밀집되어 있음.
  • 또한 금융기관도 광주은행 양동지점, 농협 서광주지점, 국민은행 양동지점, 수협 양동지점, 농협공판장, 새마을금고, 신협 등 이 있으며 한국토지공사 전남지사가 있고 양동 초등학교 등 금융기관 및 관공서가 있음.
자생조직
  • 주민 친목과 화목을 목적으로 1976년에 결성 되어있는 목화회가 28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상부상조를 하고 있음.